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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3일 토요일

아내에게 남겨진 흔적 2

출입문을 열고 들어와 내 앞에 앉은 사람, 신준식이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는 175쯤 되는 키에 넉넉한 살집으로 둥글다는 인상을 주는 말쑥한 남자였다. 

거부감이 드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쏙 드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나름대로 예의를 차리는 남자라는 것, 무지막지한 남자가 아닌 것 정도는 봐줄 만하다라는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신준식입니다.” 
“예…… 김경은이에요…….” 
“반갑습니다.” 
“예…….” 

낯선 중년 남녀의 첫 만남. 일상적인 인사치레가 오가고, 주문한 차를 기다리는 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자기는 결혼한 지 10년 차라는 것과, 9살짜리 아들과 6살 된 딸이 있다는 것, 아내에게 별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렇다고 무분별한 외도는 하지 않는다는 것 등등의 이야기가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가 나이를 물어 서른둘이라고 답하자 내 남편에 대해 물어왔다. 

자기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러 나온 여자에게 남편에 대해 묻는 걸 보니, 그도 이런 일이 그렇게 자주인 것 같지는 않아 보여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무스탕 코트 깃 사이로 보이는 하얀 목이 깨끗해 보여 혹시라도 염려되는 감염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적어지긴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스스로를 의식하고는 갑자기 등뒤가 썰렁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남자가 자기는 이번 만남이 두 번째라고 말하더니, 내게 정말 처음이냐고 물어왔다. 

조그만 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다른 말을 덧붙일 수가 없었다. 나도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이런저런 우스갯소리를 해주면서 말 중간중간에 내 외모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나의 긴장과 어색함을 풀어주기 위해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과 달리 차분한 마음이 되어 대화 도중 간간이 웃음을 보이기도 했지만, 가슴속에 자리잡은 갈등의 똬리는 어쩔 수 없었다. 대략 30분쯤 흘렀을 무렵 그가 배려하듯 말했다. 

“가정주부이시니 시간이 많지는 않겠군요?” 
“……예.” 
“자, 그만 일어나실까요?” 

그가 말했을 때 무엇에 홀린 듯 그를 따라나서는 내 모습을 깨닫고는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자의 차 안은 적당한 온도로 히터가 켜져 있고, 옆자리의 나를 의식해선지 잔잔한 음악까지 흘러나왔다. 예전에 자주 들었던 팝송이었는데,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봐도 곡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차를 운전하는 동안 내게 뭐라고 말했지만, 나는 한마디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해 있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차들과 퇴근길 사람들을 바라보며 갈등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집에 가겠다며 차에서 내려달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잠실사거리쯤에서 우회전한 그가 차를 주차한 곳은 말로만 듣던 러브호텔들이 밀집되어 있는 골목이었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내내 갈등하고 망설였지만 결국에는 그가 열어주는 차 문에서 나와 요란한 전구가 둘러져 있는 모텔 안으로 따라 들어섰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긴장이 최고조에 오른 상태라 걷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남자에게 쉬운 여자로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신을 가다듬으며 애써 태연한 척 따라 들어갔다. 카운터로 들어서니 중년 부인이 이미 둘 사이를 알고 있다는 듯 태연스레 말했다. 

“쉬었다 가실 거죠?” 

요금을 지불한 그가 열쇠를 받아들고는 내가 앞장서도록 뒤로 물러섰다. 이제는 돌아갈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두 사람이 타면 딱 맞을 듯한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더 이상 내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가 오른팔을 들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가볍게 자기 쪽으로 안아왔다. 순간 나는 흠칫 놀랐다. 

‘이 사람이 이제 내가 자기 여자라는 듯이 구는구나…….’ 

그렇다고 뿌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벨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긴 복도가 나타났다. 어두컴컴한 복도의 중간쯤까지 가는 길이 멀고도 길게만 느껴졌다. 뒷자리가 ‘7’이라고 쓰여 있는 방 앞에 이르러 문을 열면서 그가 내 뒤로 서서 들어가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출입구 오른쪽으로 깨끗하게 청소된 욕실이 보였고, 방안에는 둥그런 침대가 놓여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남자가 냉장고를 열며 마실 것을 주었지만 나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가 의자에 앉으며 엉거주춤 핸드백을 메고 서 있는 날더러 자기 앞에 앉으라고 했다. 

어느덧 그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고 있는 날 느끼며 놀라기도 했지만, 잠시 후면 그와 함께 할 그것을 생각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어차피 이렇게 만났는데, 너무 예민하게 신경 쓰지 마세요.” 
“…….” 

그가 라이터를 켜 담배를 피워 물며 말했다. 

“먼저 샤워하실래요?” 
“아뇨…… 먼저…….” 

그렇게 말하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이어 옷 벗는 소리가 들려 곁눈질로 그를 보았다. 어느새 어두운 색조의 트렁크형 팬티만 걸친 그가 벗은 옷가지들을 옷걸이에 걸고 있었다. 굵직한 다리의 많다 싶어 보이는 털과 힘있어 보이는 근육들이 남편과는 대조적이었다. 

남자도 나이가 들면 배가 나오는 법이지만, 배 나온 다른 남자의 모습을 나는 처음 보았다. 기분이 묘하고 못 볼 것을 본 것 같기도 해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화장대 위에 놓여 있던 칫솔과 면도기를 들고 욕실로 들어가면서 그가 날 돌아보며 다짐하듯 말했다. 

“옷 벗으시죠.” 
“예.” 

불에 데인 듯 놀라 대답하며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욕실로 들어가자 이내 물소리가 났고, 내 머릿속에서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신을 차려야겠는데 머릿속이 온통 답답해오고 몸이 떨려와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백을 들고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혼란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어느새 욕실 문이 열리며 그가 나왔다. 

물기도 닦지 않고 벗은 몸으로, 자기 심벌을 그대로 노출한 채 나오는 남자를 돌아보고는 까무러치게 놀라 고개를 돌려버렸다. 

“씻으세요.” 
“예…….” 

애써 담담하게 대답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지……? 옷을 입은 채 욕실로 갈까…… 아니면 벗고……?’ 
“코트 이리 주세요. 제가 걸게요.” 

코트 하나 벗지 못하고 있던 날 보고 그가 바보 취급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얼른 코트를 벗어 그에게 주었다. 아무래도 옷을 벗고 씻으러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이 지워지지 않도록 주의해 밤색 니트를 벗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남자가 자기에게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내 웃옷을 받아 접어서 의자에 올려놓는 그 앞에서 도저히 스커트를 벗을 수 없어 그대로 욕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보면서 내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정장 스커트, 위에는 슬립에 안으로는 브래지어……. 

치약이 짜여 있는 칫솔을 보며 스커트를 벗어 수건걸이에 걸고 스타킹도 벗었다. 양치질을 하면서, 평소보다 세심하고 정성스레 닦고 있다는 생각에 대강 마무리를 지었다. 속옷을 벗으며 거울 속의 여자를 보니 허리 쪽 밴드가 가는 회색 스포츠 언더웨어를 입고 있었다. 

‘남편이 선물한 속옷인데…….’ 

흰 바탕에 파스텔 톤으로 예쁘게 그려진 꽃무늬가 마음에 들어 즐겨 입는 브래지어를 벗자 하얀 살에 유난히 돋보이는 유두가 부끄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목에서부터 따뜻한 물을 뿌리며 비누를 집으려는데, 남자의 것으로 짐작되는 체모가 묻어 있었다. 

샤워기에서 뿌려지는 물줄기로 그걸 떨어져나가게 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결국에는 손으로 떼어내야 했다. 

‘다른 남자의 체모를 내 손으로 만지게 되다니…… 세상에……!’ 

대충 몸을 씻어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데, 밖으로 나갈 일이 걱정스러웠다. ‘눈 딱 감고 누워 있기만 할까? ……어쩌지?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지? ……지금이라도 가겠다고 하면 보내줄까……?’ 

방에서 그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끔찍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욕실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커다란 타월로 몸을 최대한 안 보이게 두르고 안에는 팬티와 브래지어까지 입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운 채로 양손을 머리 뒤로 돌려 팔베개를 하고 TV를 보고 있는 그가 보였다. 내 몸을 훑듯이 바라보는 그 앞에서 시선을 어디로 둘지 몰라 당혹스러웠다. 

나는 얼른 방문 옆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내려 불을 껐다. 어두워진 탓에 수치심이 덜하긴 했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온몸을 타월로 감싼,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다. 남자는 아랫배까지만 얇은 이불을 덮고 있었다. 그의 아랫부분이 두드러지게 돋아 있는 모습을 보자 너무 무서웠다. 

그가 몸을 일으켜 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머리의 수건도 벗지 못한 채 끌리듯 그의 옆으로 들어가 가슴까지 이불을 끌어올렸다. 옆에 나란히 누운 남자가 내 머리를 들어 자기 팔 위에 올려놓으며 한 손을 이불 속으로 넣어 내 가슴 위에다 올려놓았다. 브래지어와 수건 위로 남자의 손길을 느끼며 순간적으로 흠칫 진저리를 쳤다. 

머리에 두른 수건을 벗겨낸 남자의 다른 쪽 손이 이번에는 다리를 만져왔다. 흥분이라기보다는 뱀이 지나가는 듯한, 섬뜩한 느낌이었다. 남자의 손길이 움직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 가슴이 터질 듯했다. 수건을 올리고 내 아랫배를 만지는 남자의 손길이 제법 따뜻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 그가 조용히 물었다. 

“정말로 처음이신가 봐요?” 
“예…….” 

그가 내 팔 밑으로 손을 넣어 몸을 감싼 수건을 벗겨냈다. 이불이 걷히고, 팬티와 브래지어만 입은 채로 외간 남자에게 남김없이 보여지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 눈을 감고 고개를 외로 틀었다. 

날 내려보던 남자가 숨을 길게 내쉬며 윗몸을 조금 일으켰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내 무릎부터 허벅지를 반복해 쓰다듬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라 가슴을 떨었다. 팬티 위로 손을 놀려 내 가운뎃부분의 위쪽을 쓰다듬어갈 때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극에 달해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최대한 다리를 오므려 그에 손이 들어올 수 없도록 해야 할 것 같아 힘을 주고 있는데, 내 입을 막으며 그의 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이를 악물었지만 결국에는 입을 조금 열어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남자의 혀가 들어오자 다리의 힘이 빠지고 브래지어 속에서 움직이는 그의 손이 더욱 우악스럽게 느껴졌다. 한동안 입을 맞대고 혀를 넣어 나를 느끼던 남자가 한 손을 뒤로 돌려 브래지어를 능숙하게 벗겨냈다. 젖가슴을 한 손 가득 쥐고 때로는 세게, 때로는 부드럽게 마사지하듯 만지던 그가 아래로 쓸어가며 팬티 안으로 손을 넣었다. 

순간 열릴 듯하던 내 몸은 갑자기 긴장하며 반응을 멈추었는데, 그런 것도 모른 채 남자는 팬티 안에서 손을 내려 다리를 양쪽으로 벌리더니 손가락으로 입구를 건드렸다. 

무엇을 확인이라도 하듯 잠시 동안 손가락으로 입구를 자극하던 그는 내가 반응이 없는 듯하자 한쪽 다리를 내 위에 얹고는 목에서부터 가슴으로 애무를 해오기 시작했다. 

남편이 입에 물고 애무하던 내 유두를 낯선 남자가 자극해오자 뭐라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남편과는 패턴이 다른 남자의 애무가 점차 내 몸을 덥게 하고 있을 때 그가 내 아래쪽을 공략해오기 시작했다.

두 다리가 갈라지는 골반 부근에서 맴돌며 장난하듯 나를 애무하던 남자의 혀가 마치 핥듯이 옆구리를 지날 때는 아랫배가 불룩 들어갈 만큼 짜릿했지만 표현하기 창피해 애써 내색하지 못했다. 

그저 눈 딱 감고 누워만 있으리라던 생각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어느새 점점 다른 자극을 기대하는 내가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점점 젖어가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양쪽으로 조금 크게 벌어져 있는 음순을 남자가 입술로 물어오면서 콧바람이 와닿을 때는 이미 아래에 힘이 빠지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혀로 내 클릿을 애무하며 소리나게 빨기까지 하는 남자가 어느새 자리를 바꾸어 내 가슴에 올라앉았다. 허리를 굽히고는 양손으로 내 다리를 벌린 다음 입으로 그곳을 애무했다. 

남자의 두 발이 내 귓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갈라진 남자의 엉덩이 아래로 남편의 그것과 생김새가 같은 페니스가 음낭과 함께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남편의 그것이라면 손으로 잡아 입에 넣고 빨며 같이 즐겼을 테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간간이 엉덩이를 뒤로 밀어 페니스 앞부분이 내 입술에 닿게 하며 자신의 의도를 감추지 않았지만,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자존심과 남편에 대한 죄스러움은 고개를 내젓게 만들었다. 

남자의 음낭 부분을 검게 덮고 있는 털 때문에 코와 입술 부근이 간지러워 고개를 돌리자 얼굴과 귀 부분에 그것이 부딪쳐왔다. 

그 동안에도 쉬지 않고 움직이던 그의 혀는 마치 벌레처럼 꼼지락거리며 내 클릿과 음순을 자극해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때로 깊숙하게 밀고 들어오는 남자의 혀가 내 안에서 잠시 머물다 나갈 때는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밀어 그를 잡으려고 했지만 야속하게도 적당한 타이밍에 돌아가는 그가 날 미칠 것 같은 상태로 만들었다. 나도 더 이상은 참기 힘들었다. 

남편 것과 크기가 다른 그의 페니스를 입에 물고 말랑말랑한 귀두 부분을 혀로 느끼며 딱딱한 아랫부분까지 입 안 깊숙이 넣었다 빼기를 되풀이했다. 

목 안쪽까지 깊숙이 남자의 페니스를 넣을 때는 유난히 많은 체모가 입술과 코 언저리를 까슬까슬하게 자극해와 남편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고 자신의 페니스를 빨고 있는 나에게 두 발을 모아 목을 발꿈치로 받쳐주었다. 

입 안에 들어 있는 그의 페니스가 처음과 다른 호흡을 하는 것을 느낄 때쯤 그가 일어나 나를 돌려 눕혔다. 그러고는 허리를 들어올려 무릎을 굽히고, 다리 사이를 벌리게 하더니 내 뒤에 엎드려 항문을 혀로 핥았다. 흡사 머릿속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남편도 배를 깔고 엎드리게 한 다음 다리를 벌려 항문을 애무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자극적인 모습으로, 엉덩이를 치켜들게 한 채로 애무한 적은 없었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으로 움찔했지만 형용할 수 없이 감미롭고 짜릿한 느낌에 몸을 떨며 그가 이끄는 대로 나를 내맡겼다. 

음순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의 혀를 느끼며 오랫동안 머물러주기를 바랐지만 감질나게 되돌아나가기를 여러 차례 거듭해 이제는 그만 넣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엉덩이를 뒤로 밀어대며 양손으로 시트를 움켜쥐고 애타게 몸부림치는 내 모습이 남자 눈에 어떻게 보일까……?’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남편과의 그때처럼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남자의 혀가 떨어지는 듯하더니 그가 엎드려 치켜든 내 엉덩이 사이로 자리를 잡는다. 엎드린 채 다리 사이로 아래쪽을 흘깃 바라보니 그가 자기 페니스를 한 손으로 잡고는 다른 손으로 내 엉덩이를 잡은 채 귀두 부분으로 음순을 아래위로 문지르며 내 안에서 나온 애액을 골고루 묻혔다. 

순간 나는 심호흡을 길게 하며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지만 남자는 음순과 클릿을 페니스로 애무하기만 할 뿐 좀처럼 넣지 않았다. 내 입구는 내 안에서 나온 애액으로 이미 흠뻑 젖어 있어 창피하기까지 했지만, 남자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그렇게 애무만 계속했다. 

이제 그만 넣어달라는 몸짓으로 시트를 움켜쥐고 고개를 양쪽으로 움직이자 남자가 갑자기 엉덩이를 양손으로 벌리며 깊숙이 집어넣었다. 

입 안에서 느끼던 그의 페니스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순간 깜짝 놀라며 잠시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전율이 엉덩이에서 등을 타고 머리 쪽으로 올라왔다. 

그 때부터는 내가 엉덩이를 앞뒤로 쉬지 않고 움직였는데, 남자는 허리를 앞으로 굽혀 내 가슴과 유두를 손으로 세차게 움켜쥐었다. 내 안에 그의 페니스를 넣고 정신없이 움직이는데, 그가 부끄럽게 다물고 있는 내 항문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 항문과 질 사이의 얇은 살갗을 통해 자기 페니스를 부드럽게 눌러왔다. 페니스가 움직이는 대로 내 질 속과 항문 사이에서는 참기 어려운 떨림이 남자의 손가락을 통해 끊이지 않고 느껴졌다. 

그렇게 몸이 달아 움직이는 도중에 남자가 갑자기 내 엉덩이를 잡아 멈추게 했다. 그러고는 다리를 펴고 철퍼덕 앉더니 나를 자기와 마주 보고 안은 채로 삽입해왔다. 

나는 양팔로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몸을 최대한 붙여 페니스를 내 안에 머금었다. 내 안에 깊숙이 들어와 마치 자기 자리인 듯 뻔뻔스럽게 헐떡이는 남자의 페니스를 느끼며 아래위로 엉덩이를 움직이려는데, 그가 한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좋아……?” 
“예…….” 

남자의 눈을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린 채로 대답하자 그가 입을 마주 대며 혀를 넣어왔다. 순간적으로 나는 방금 전과 다른 간절하고 순수한 마음을 담아 입 안 가득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그가 내 엉덩이를 들어 아래위로 움직이는 것을 도와주며 내게 눈짓해 아래를 보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보니 내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남자의 페니스가 보였다. 

핏줄이 도드라진 남자의 페니스 끝에 내 안에서 흘러나와 묻어 있는 하얀 애액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부끄러웠지만, 그렇다고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남자가 마주 앉아 아래위로 움직이던 나를 눕히고는 양 발목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크게 벌리며 치켜들고 자기 허리를 움직여 페니스로 음순을 자극했다. 이제 내 입구는 최대한으로 벌어져 남자에게 보이게 되었다. 

이윽고 그는 내 발목을 잡고 치켜든 채로 삽입해 아주 빠르게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양손을 뒤로 뻗어 벽에 붙이고 그가 더욱 빠르고 깊이 왕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면서 남자가 내 속에 사정하리란 것을 느꼈다. 나는 그가 최대한 깊숙이 사정할 수 있도록 엉덩이를 밀며 벽을 짚은 손에 힘을 준 채 호흡을 멈추었다. 그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움직이자 아래로부터 놀라운 느낌이 치밀어왔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신음을 흘렸다. 괴롭게 몸이 비틀려오는데 남자의 페니스가 움찔하며 아주 뜨거운 정액을 깊숙이 사정해왔다. 몇 번을 그렇게 움칫하며 불뚝불뚝 움직이던 남자의 페니스에서 정액이 뿜어져 나와 내 몸 안 깊숙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으며, 아스라이 혼절하는 것 같은 오르가슴이 찾아왔다. 

마치 죽을 것만 같은 떨림과 짜르르한 수축을 느끼며 손아귀에 시트를 움켜쥐고 질벽에 힘을 줘 수축하자 순간의 느낌이 오래도록 남아 아랫부분을 떠나지 않았다. 남자가 내 위로 힘없이 무너지며 덮어와 양손으로 그의 등을 끌어안고 쓸어주며 무의식적으로 아래에 힘을 줬는데, 그의 페니스가 움찔움찔 화답해왔다. 

‘남편은 이렇게 아래에 힘을 줘 살짝살짝 수축하는 느낌이 제일 좋다고 했는데…… 이 사람도 그럴까……?’

* * * 

한참 동안 내 위에 엎드려 가쁜 숨을 식히는 남자와, 맞닿은 배와 젖가슴에는 미끌미끌한 땀이 흘러 있었다. 갑자기 불쾌감이 밀려오면서 잠시 전의 뜨거움이 저 멀리 달아났다. 

순간 남편 아닌 다른 사내의 품에 안겨 그의 페니스를 빨고 내 몸에 집어넣어 정액까지 받아 가득 채워넣었다는 생각이 들자 내 위에 엎드려 여전히 자기 페니스를 제 집처럼 들이밀고 있는 그가 소름끼쳐왔다. 

남자의 페니스는 줄어들어 아까만큼의 포만감은 없었지만, 작아진 탓에 내 안에 가득 찬 정액이 조금씩 항문 쪽으로 흘러나와 차갑게 느껴졌다. 단내가 나는 그의 숨소리를 듣자 더욱 빨리 몸이 식는 듯해 무거운 그를 밀어 옆으로 눕히고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치솟는 수치심과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떨며 몸을 일으키는데, 몸 안에 가득 찼던 남자의 정액이 울컥 흘러나오며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샤워할 생각도 못한 채 수건으로 남자의 흔적을 대충 닦고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려 있는 팬티와 브래지어를 입었다. 거울을 보니 머리가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천박한 속옷차림의 여자가 서 있었다. 

서둘러 옷을 입고 남자가 깨지 않도록 주의하며 핸드백을 연 다음 립스틱을 꺼내 화장을 고쳤다. 머리를 뒤로 묶어 올리고 스타킹을 입으려 스커트를 위로 올리는 순간 남자가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안 씻고 가시게요?” 

순간 나는 깜짝 놀라며 못된 짓을 하다가 들킨 어린애처럼 황망하게 스커트를 내렸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요…….” 

그는 아쉽다는 듯 일어서서 스카프를 두르는 나를 바라보았다.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순간 절대로 연락처를 주지 말라던 김 실장의 말이 떠올랐다. 

“글쎄요…….” 

그가 자기 패스포드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잠시 속으로 망설이다가 ‘바로 버려버리면 되지, 뭐……’ 하는 생각으로 일단 받았다. 

핸드백을 열어 남자의 명함을 넣고 코트를 입는데, 다가온 남자가 내 뒤로 손을 돌려 마치 자기 아내에게 그러듯이 코트 깃을 가지런히 해주었다. 

“고마웠어요.” 

무엇이 고맙다는 말인지는 애매했지만, 그 의미를 안다는 듯한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려 방문을 열었다. 

“저 먼저 갈게요…….”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댁까지 모셔다드리지 못하니 택시 타고 가세요.” 

남자는 조심스럽게 핸드백에 하얀 봉투를 하나 넣어주었다. 순간적으로 김 실장이 말하던 ‘대가’라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에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게 내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해 한사코 사양하는데, 남자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거듭 넣어주었다. 이미 현관문이 열린 터라 남의 눈에 띄기 전에 빨리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지막이 인사말을 남기고 나는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갔다. 어두워진 골목길에는 간혹 모텔로 들어가는 승용차들만 보였다. 다행히 오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나는 잰걸음으로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택시 뒷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방금 전의 일을 생각하자 나 스스로가 그렇게 한심할 수 없었다. 몇 번씩 고개를 흔들어도 가시지 않는 남편에 대한 죄책감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순간적인 호기심이 이렇게 고통스런 현실로 이어질 줄이야……! 
생각할수록 당혹스럽고 스스로 부끄러웠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한편으로, 뒤처리를 잘 하지 않은 탓에 몸 속에 차 있던 남자의 정액이 자꾸 흘러나와 속옷을 적시고 있었다. 

찝찔하고 불쾌한 느낌으로 빨리 집에 가서 씻어야겠다는 생각만 하며 차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열쇠를 넣어 돌리니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할 때 잠그지 않고 나갔거나 누가 와 있다는 뜻이었다. 다시 반대로 돌려 문을 열자 눈에 익은 남편의 구두가 한눈에 들어왔다. 주말부부로 지내는 남편이 예정에 없던 본사 출장으로 집에 돌아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에게 남겨진 흔적 1

오전 외근을 마치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 앞에서 지역 정보지 몇 장을 버릇처럼 갖고 왔다. 사무실로 들어와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자잘한 광고들이 몇 줄씩 나열되어 있는 정보지를 뒤적이는데, 특이해 보이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광고 문구였다. 

만남…… 이벤트…… 절대 비밀보장!! 

‘만남 이벤트? …… 절대 비밀보장이라니, 무슨 말이지……?’ 
간단하게 쓰여진 몇 줄이 고작이었지만, 제 딴엔 자기네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그런 류의 문구들 중 대부분은 유치하고 저속한 표현들 일색이긴 했지만, 그런 노력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무심코 지나치기엔 너무도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었다. 

여성 무료……! 
상류층 회원 다수 확보……! 
강남 최고의 역사와 전통……! 
허전한 생활의 무료함을 멋지게 탈출……! 
겨울 찬바람을 막아줄 따뜻한 사랑……! 

문구는 한정된 지면을 가득 메워서라도 어떻게든 회원을 확보하려는 듯 갖가지 선정적인 표현으로 가득했는데, 마지막 줄에서 남자는 무료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 여성회원 원장 직접 면접상담, 절대 미모 보장! 

매일같이 눈에 띄는 광고라 무시해오던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눈에 뭐가 씌었는지 큼지막하게 눈앞을 가로막았다. 게다가 광고의 내용을 어렴풋이 상상하면서 가슴까지 쿵쾅거리는 나 자신을 느끼며 웃음까지 흘러나왔다. 

‘그냥 한번 전화나 해볼까……?’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조용히 자기 할 일에 매달려 있는 눈치였다. 나는 표나지 않게 정보지에 나열되어 있는 몇 개의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한 다음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리고 회사 옥상에 있는 야외휴게소로 가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광고 문구를 실은 사무실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거기 이벤트 사무실이죠……?” 
“예, 맞습니다. 그런데, 어디세요?” 
“예, 저…… 광고 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려왔지만 저쪽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와 억양은 그런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차분하고 친절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는 분이시죠? …… 아, 그냥 참고하려고 그래요.” 
“그냥 직장에 다니는데…….” 
“아, 그러세요? 그럼 잠깐 나오실 수 있으세요? 어디세요, 지금?” 
“예, 여긴 역삼동인데요.” 
“어머, 그래요? 가깝네요, 여긴 강남역 근처예요. 오실 수 있죠?” 
“예…… 근데 꼭 가야 하나요? 그냥 전화로 이야기하면 안 되나요?” 

설명을 듣지 않아도 대략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는 바라, 내 호기심을 들키는 것 같아 창피하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방문을 요구해 신분이 노출될까봐 염려되었다. 순간적으로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고, 자칫 직장 동료들과 주변 사람들 입에 이 사실이 오르내리게 된다면……! 

하지만 오랜 호기심과 알 수 없는 기대감이 그런 이성의 감각을 짓누르고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상대방은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 더욱 적극적으로 나왔다. 

“오셔서 저랑 잠깐 얘기를 나누시면 돼요. 어떤 분인지 제가 알아야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어떤 스타일의 남성 분을 원하시는지도 알아야 되지 않겠어요? 전화로는 다 알 수가 없는 거잖아요? 잠깐이면 돼요. 처음이시니까 좀 망설여지시겠지만 다른 분들도 잘 오시는 걸요, 뭐. 아무 걱정 마시고 한번 들르세요.” 
“예, 그렇군요……. 정확히 어딘데요, 위치가……?” 
“예, 여기는요…….” 

나는 곧 방문할 것처럼 전화를 끊고는, 걱정 말라는 그 여자의 말이 마음에 걸려 결국 찾아가지 못했다. 걱정을 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의 한 편으로 마음이 너무도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내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이튿날 출근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어제 그분이시죠?” 
“예, 그런데…… 누구신지?” 
“저…… 어제 전화하고…….” 
“아, 어제 통화했던 그…… 직장에 다닌다고 하신……?” 
“예…….” 
“호호, 뭘 그렇게 불안해하세요? 다들 잘 오시는데……. 걱정 마시고 오세요. 비밀은 절대 보장되니까요, 호호호!” 
“예, 그럼…….” 

통화를 끝내고 오전 일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녀가 일러준 대로 택시를 타고 직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그 사무실로 향했다. 

그녀가 강조한 피부 마사지실 간판이 걸려 있는 입구에 도착해 한참 동안 망설였다. 건물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치면 마치 내가 큰 죄를 짓다가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괜히 고개가 움츠러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간신히 용기를 냈다. 그리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스무 개 남짓한 계단을 간신히 올라갔다. 벽이 회색으로 칠해진 사무실 문을 밀치고 들어가자 다섯 평 남짓한 공간에 놓인 책상 두 개와 응접 세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실내는 제법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잔뜩 몸을 움츠러들게 했던 불안감은 어느덧 봄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아까 전화하셨던 경은 씨죠?” 
“예, 안녕하세요……?” 
“예, 어서 오세요. 세상에! 이렇게 직접 뵈니 너무 매력적이시네요, 호호! …… 전 김 실장이라고 해요.” 
“예…….” 
“않으세요. 커피 한 잔 드릴게요.” 
“예…….” 

이윽고 커피를 내온 그녀와 마주 앉아 있으려니 왠지 다시 낯설고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건네받은 커피 잔을 입에 대지도 못한 채 그냥 두 손으로 감싸쥐고 있었다. 자신을 김 실장이라고 소개한 여자가 물었다. 

“어떤 광고지를 보셨어요?” 
“예…… ○○○인데요…….” 
“아, 그렇군요. 제가 참고하려고요. 근데…… 이벤트사 이용은 처음이신가 보죠?” 
“예…….” 
“그래요.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불안해들 하세요. 그렇지만 몇 번 만나보시고 나면 달라져요. 지금까지 다 그래요, 호호호!” 
“예…….” 
“결혼은 하셨어요?” 
“3년 되었어요.” 
“그렇군요. 남편께서 잘 못해주시나 보다, 그쵸……? 호호호!” 
“아뇨…… 그이는…… 떨어져 계시거든요…….” 
“어머나! 이렇게 예쁘신 분을 혼자 놓아두시다니, 호호호……! 사실 우리 사무실 여자 회원 분들 중 대부분이 그런 분들이세요. 잘 오셨어요.” 

그녀는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보았다는 듯 나를 안심시키고 편하게 해주기 위해 애쓰는 눈치였고, 나도 그리 싫지는 않았다. 사무실을 찾는 여자들 중 대부분이 나와 같은 처지의 유부녀들이라는 말에 적잖이 안심되었고 불안감도 어느 정도 누그러들었다. 그렇지만 ‘나 같은 처지’란 어떤 처지를 말하는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경은 씨……. 경은 씨는 어떤 만남을 원해요?” 
“예?” 
“괜찮으니까 우리끼리 솔직하게 말해요. 만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뭔데요?” 
“예…… 첫 번째는 순수한 만남이에요. 그건 말 그대로 순수한 만남을 의미해요. 만나서 대화하고 차 마시고…… 애인처럼, 아니면 친구처럼 만나는 거죠. 물론 두 사람이 마음에 들 경우지만요…….” 
“두 번째는요?” 

김 실장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두 번째는…… 만나서 엔조이하는 만남이에요.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이니 뒤탈도 걱정 없어요. 남자는 우리가 신분도 확인한,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물론 우리 회원이죠. 그리고 그런 만남은 약간의 대가도 받을 수 있어요.” 
“대가라면……?” 
“사실대로 말하면…… 만나서 즐기고 헤어지는 일회성 만남이에요. 남자는 그 대가로 여자 분에게 10만 원에서 15만 원 정도를 사례비로 주고요. 어때요, 해보실래요?” 
“…….” 
“만약 그런 만남이 싫으시면 순수한 만남으로 하셔도 되고요. 본인이 좋은 걸로 하세요……. 절대 강요가 아니니까…….” 
“…….” 
“거듭 말하지만,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우리 사무실은 그런 데 아니니까……. 그렇게들 많이 즐기세요. 그런데 경은 씨는 키가……?” 
“예, 168이에요…….” 
“어머! 어쩐지…… 아까 들어오시는데 훤칠하시고 늘씬하시더라니! 남자들이 좋아하겠어요, 호호호호!” 
“뭘요…….” 
“몸무게는 어떻게 돼요?” 
“예, 요즘은 한 52쯤 될 거예요…….” 
“좋아요, 아주 적당하죠. 에구! 난 살이 쪄서 누구 하나 거들떠도 안 봐요. 호호호호!” 
“아직 예쁘신데요 뭐…….” 
“후훗! 경은 씨에 비하면 할머니죠, 호호! 나이는 올해……?” 
“서른두 살이에요.” 
“어머, 좋아라, 너무 좋은 나이다……!” 
“고마워요…….” 
“저…… 경은 씨……?” 
“예…….” 
“어차피 남편 분과 그렇게 떨어져 계시다면 그렇잖아요……?” 
“…….” 
“괜찮으니까 한번 만나보세요. 남들도 다 하는데요, 뭐. 그런다고 남편이 알 것도 아닌데…… 안 그래요……?” 
“그래도…… 좀…….” 
“순수한 만남도 좋지만 기왕이면 즐기고…… 약간의 용돈도 받고…… 그게 좋잖아요……?” 
“……글쎄요.” 
“남자는 어떤 스타일이 좋을까요? 말해봐요. 우리끼리니까…….” 
“…….” 
“괜찮아요, 말해봐요. 거의 원하는 남자 분으로 맞춰드릴 수 있어요.” 
“예…….” 
“아무래도 깨끗하고 매너 있는 남자가 좋겠죠?” 
“…….” 
“유부남이 좋을까요…… 아니면 총각?” 
“…….” 
“그래요…… 내가 알아서 좋은 남자로 소개시켜 드릴게요. 걱정 말고 편하게 만나시면 돼요. 남자가 알아서 리드하니까. 그리고 만나서 헤어질 때 절대로 연락처 같은 건 주지 말고요. 혹시 모르니까……. 귀찮게 전화하면…… 알았죠? 오늘은 어떠세요? 괜찮죠?” 
“……?”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나의 그런 침묵을 동의로 간주한 듯 그렇게 결정하고는 곧장 연락처와 만남이 가능한 시간과 장소 등을 물었다. 딱히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오늘 당장 누구를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묻다니……! 한참 동안 망설인 끝에 내 휴대폰 번호를 일러주고 그곳을 나서는데, 김 실장이 등뒤에 대고 말했다. 

“경은 씨, 즐거운 만남 가지세요.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곳을 빠져나온 나는 어떻게 사무실까지 돌아왔는지 몰랐다. 그리고 사무실로 들어와서도 방금 전 내가 무슨 짓을 벌이고 온 건지를 떠올리며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낯선 남자를 만난다…….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쩌지? 설마……!’ 
이런저런 혼란스런 기분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날 오후, 퇴근시간을 두 시간쯤 남기고 있을 무렵 갑자기 휴대폰에 호출번호가 찍혔다. ‘3325’, 점심 때 찾아갔던 사무실의 뒷자리 번호였다. 나는 즉시 사무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예, 김 실장이에요. 경은 씨죠?” 
“예.” 
“잘 들어갔어요? 호호호! 그나저나 경은 씨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호호호!” 
“왜요?” 
“저기…… 우리 회원 중에 점잖고 매너 좋은 분이 계신데, 오늘 만나고 싶으시데요. 경은 씨, 시간 괜찮다고 했죠? 한번 만나보세요.” 
“저…… 어떤 사람인데요?” 
“예, 나이는 서른아홉이고, 사업하시는 사장님이에요. 매너 좋으시고 너무 착한 분이세요. 키는 중간이고 잘생기셨어. 호호호! 경은 씨도 만나면 마음에 들 거야.” 
“그래요…… 저…… 정말 괜찮을까요……?” 
“그럼,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소개하는 거니까, 알았지?” 
“그래도 좀…….” 
“에이, 뭘 그렇게 걱정해? 오늘 만나보고 나중에 또 만나게 해달라고 조르지나 말아. 호호호!” 
“예…….” 
“퇴근이 6시라고 했죠? 6시 30분에 강남역에 있는 가나 커피숍으로 나와서 기다려요. 시간이 되면 카운터에서 경은 씨를 찾는 전화가 올 거야. 알았죠? 그럼, 데이트 잘해요. 호호호……….”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김 실장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일방적인 전달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말미에 진지한 말투로 ‘약속시간 잘 지키고’라는 말과 함께. 퇴근시간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하지만 통화를 마치고 나자 내내 나는 불안한 심정으로 후회를 거듭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몇 시간 동안 같이 있어야 하다니……!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그건 그렇고…… 만나서 어쩐다……? 커피 마시고…… 무슨 얘기를 하지……?’ 
불안과 초조함으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 기색을 눈치챘는지 옆자리의 미스 김이 문득 물었다. 

“언니,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아무 일도…….” 

마치 내 행동거지를 들키기라도 한 듯 화들짝 놀란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서둘러 화장실로 갔다. 

‘세상에……!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불안에 떠는 마음과 달리 화장을 고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고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거울 속 얼굴에는 마음속처럼 그렇게 천박하거나 불안한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뻔뻔해 보이기까지 해 이게 진정 내 얼굴인가 하는 의아심이 들었다. 

누가 봐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나 아닌 다른 여자, 그녀가 천박하지 않은 세련된 컬러의 루즈로 입술을 그리고 있었다. 퇴근 후 그녀가 일러준 곳으로 나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려니 후회와 긴장,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전신이 경직되어 얼어붙는 듯했다. 

약속시간까지 아직 5분 정도 남아 있었지만, 그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둘째 문제였다. 차라리 아무런 연락이 없어도 좋으니 상대방이 나타나주지 않기를 바랐다. 머릿속으로 온갖 갈등이 스쳐갔다. 

‘목소리만 들어보고 맘에 안 들면 그냥 달아날까? …… 아님 지금이라도……?’ 그런 내적 갈등의 순간도 잠시였다. 

“김경은 손님, 전화 받으세요.”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여 멈칫거리다가 내 이름이 두 번 이상 불리는 창피는 피하고 싶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예…… 저는 신준식이라고 합니다. 김경은 씨 되시죠?” 
“예, 제가…….” 
“예, 나오셨군요……. 처음이시라는 말을 듣고 안 나오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 
“저는 지금 아래층에 있습니다……. 올라가겠습니다.” 
“예…….” 
“무슨 옷을 입고 계시죠?” 
“남색 스커트에…… 밤색 니트요…… 창가 쪽이에요…….” 
“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