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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4일 일요일

아내에게 남겨진 흔적 4


눈을 뜨니 옆에는 곤한 표정으로 남편이 잠들어 있었다, 어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잠든 남편의 얼굴을 응시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처음보는 남자와 몸을 섞고 돌아와 또다시 남편을 받아들이고 잠들었던 내가 미웠다……. 이렇게 평화롭고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남편을 두고 나는 과연 무슨 짓을 한거지……!

후회가 막급하고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어제 일을 없었던 것으로 돌려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속죄하듯 서둘러 일어나 냉장고를 털어 국물을 만들고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침 시간이 지나가고, 남편과 함께 출근하는 차 안에서 내게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 어젯밤엔 무척 예쁘고 섹시하던데……?”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이가 설마…… 아닐 거야……. 아니, 알 리가 없지…….’

나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랬어요?”

남편의 말에 형식적인 대꾸를 하는데, 어젯밤의 부족함을 못내 참을 수 없었던지 한 손을 뻗어 슬쩍 내 스커트 밑으로 넣어왔다.

테헤란로의 아침 출근길은 가히 살인적이다. 옆으로 설설 기어가는 다른 차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지만 거절할 수 없어 남편이 만지기 편하도록 엉덩이를 들어주었다. 어제 만난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고 남편을 만족시켜주지 못했음을 미안해하며…….

남편의 손길이 분주했다. 엷은 검정색 밴드스타킹 끝부분이 보일 만큼 스커트가 들춰졌고, 그이가 갈아 입혀준 하얀색 면 팬티가 드러났다. 몸을 왼쪽으로 돌려 남편의 손이 편하게 움직이게 하고는 고개를 돌려 옆 차선을 보니 우리 쪽을 주시하는 차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담하게 엉덩이를 들고 스커트를 허리춤까지 올렸다. 그래야할 것같았기 대문이다, 남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지만 그날아침 나는 그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이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텐데……?”
“보면 좀 어때…… 자기가 원하는데…….”
“김경은 너 정말 대단하다……. 근데 나 없을 땐 절대 이러면 안 돼. 알겠지?”
“그럼! 자기 옆이고, 또 자기가 보길 원하니까 그런 거지…….”
“하하하, 어쨌든 놀라워! 매일 자기랑 출근했으면 좋겠다……. 이번에 아예 서울로 전보 신청을 해야겠군.”
“그래…… 서울로 올라와, 자기야. 나도 자기랑 같이 살고 싶어…….”
“응, 그래야겠다. 그런데…… 본부장님이 보내줄지……. 아마 안 보내줄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편은 나의 그곳에다 손가락을 넣었다. 그리고 연신 양 옆 차선을 살피느라 좌우로 고개를 돌리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보였다, 나는 더욱 대담해졌다.

“자기야, 위에도 벗어볼까?”
“…… 미쳤어? 안 돼!”

벌써 나의 그곳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남편의 시선은 자기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미세한 소리가 나는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빨갛게 상기된 남편의 얼굴을 의식하며 나도 어떻게 해주었으면 싶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불가능했다, 내가 뜨거운 숨결을 몰아쉬며 말했다.

“자기야…… 내 속옷 벗어줄까? 갖고 갈래?”

귀엽게 웃으며 날 바라보는 남편의 표정이 호기심과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남편이 원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그것까지 원하지는 않았다. 회사 앞에 도착해 나를 내려준 남편이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음주에 만나!”

그 말만 남기고 그는 내가 뭐라고 대답해주기도 전에 뒤차에 밀려 서둘러 출발했다.

* * *

사무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따뜻하고 차분한 분위기 그대로였다, 아침 일찍 커피를 마시며 하는 부서 미팅이 있었다. 각자 업무사항을 보고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데, 옆자리의 미스 신이 물어왔다.

“언니, 오늘 차 태워준 분 누구세요? 출근할 때…….”
“아, 남편이야.”
“아, 그래요? 차에서 내리는 거 봤어요.”

마치 조금 전 남편과의 일을 모두 지켜보기라도 했다는 듯이 눈웃음 짓는 미스 신을 보고 한 번 더 짜릿한 여운이 찾아왔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호출기에 낮익은 번호가 떠오른 때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무렵이었다.

“경은 씨? 나, 김 실장이에요. 어젠 잘 들어갔어요?”
“아…… 예.”
“호호, 어땠어요? 좋았어?”
“……예.”

내 대답을 확인한 김 실장의 목소리에는 어느덧 생기와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호호호, 그것 봐.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요령도 생기고 괜찮아.”
“…….”
“저쪽에서 전화를 해왔는데, 경은 씨가 너무 좋았다고, 고맙다고 전해달래. 호호호.”
“예…….”
“경은 씨 정말 대단한가 보다, 호호호……! 다음에 또 좋은 분 있으면 내가 알려줄게. 아 참, 그리고 연락처는 안 줬지?”
“예…… 안 줬어요.”
“절대로 주면 안 돼, 알았지?”
“예.”
“그래요, 경은 씨. 다음에 연락할게, 잘 있어요.”

어느새 친한 동생 대하듯 하대하는 그녀가 왠지 불쾌했다. 이젠 연락하지 말라고 말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한 채 통화가 끊어졌다. 남에게 드러나 결코 좋을 리 없는 나의 비밀을 아는 여자, 그녀가 자유롭게 연락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 불안하고 꺼림칙해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 * *

김 실장이라 불리는 여자가 다시 연락을 취해온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서였다.

“경은 씨, 잘 있었어? 나야, 김 실장.”
“예, 안녕하셨어요?”
“경은 씨, 오늘 시간 어때? 근사하고 매너 있는 분이 한 분 계신데, 만날 수 있겠어?”
“오늘은 좀…….”
“왜? 약속 있어? 중요한 약속 아니면 그분 만나면 좋겠는데……. 안 돼……?”
“중요한 약속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내가 머뭇거리자 김 실장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별것 아니면 내일 다시 약속하고 오늘은 이분 만나면 좋겠다.”
“…….”
“너무 근사하신 분이야. 나이도 약간 지긋하신 분이니까 전에 만났던 사람하곤 다를 텐데……. 만날 수 있지……?”
“……몇 살인데요?”

어느덧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나이를 묻고 있었다. 속으로 ‘이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하면서도 약속이 있다고 둘러댄 속내가 빤히 김 실장에게 탄로난 것처럼 얼굴이 뜨거워졌다.

“어, 올해 마흔다섯 되신 분인데 대기업 임원이셔. 점잖으신 분이니까 안심해도 돼. 어때, 괜찮지?”
“글쎄요…….”
“기왕 만나는 거 서로 기분 좋게 만나야지, 안 그래?”
“…….”
“시간은 6시 30분이고 장소는 그때 거기야, 알았지? 그럼 잘 만나고 재미있게 놀아!”
“…….”

내가 망설이자 김 실장은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 쪽에서 망설인 탓도 있지만, 나처럼 머뭇거리는 여자를 어떻게 다뤄야 한다는 것쯤은 경험상 훤히 꿰뚫고 있을 김 실장이었다. 그녀의 억양이 워낙 엄격해 그만두겠다는 말도 못한 채 후회하고 주저했던 것과 달리 다시 낯선 사내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퇴근시간이 되어가면서 남편의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같은 부서 직원인 듯한 여자가 받았다.

“지금 통화 중이신데, 기다리시겠어요?”

저쪽에서 수화기를 든 여직원은 내가 그의 아내임을 알고 있었다. 다정하고 친근하게 전화를 받아주는 그녀가 고맙게 느껴졌다.

“아뇨, 나중에 다시 걸게요.”

그렇게 말한 다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여직원을 통해 그가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자 마음속 불안감이 조금은 가셨다. 신혼 때부터 지방의 지역본부에서 근무하는 남편에게 그다지 큰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런 남편이 야속하게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이유를 생각해내기도 전에 퇴근시간이 되었고, 나는 약속된 자리에 나가 또 다른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카운터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고 알려주었다, 무슨 급한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다급히 그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자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말했다. 주차하기가 어려워 길가에 서 있으니, 미안하지만 내려와줄 수 없겠느냐고.

얼굴도 모르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는 굵직하고 정중했다, 계단을 내려가며 이대로 그냥 집에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그가 말한 검정색 승용차 옆에 벌써 도착해 있었다. 나는 차 문을 열어주는 쪽을 향해 가볍게 목례하고는 허리를 굽혀 옆자리에 올랐다.

슬쩍 교차하는 눈길로 한순간 그의 시선이 내 다리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고 앞만 보았다.

‘정말…… 내가 김경은 맞는 거야……?’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리려 그가 묻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건성으로 대답했던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깨끗한 일식당 주차장에 도착했다. 작은 방으로 들어가 어색하게 마주 앉아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그가 물었다.

“나이가…… 서른둘이라 했나요?”
“예…….”
“서른둘 같지 않군요. 이십대 중반 같아요…….”
“예에…… 감사합니다.”
“결혼한 미시라 했던 것 같은데……?”
“예…….”
“그렇군요……. 그럼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는 않아도 만나는 건 그리 부담스럽지 않겠죠?”
“…….”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만나길 원하고…… 그…… 같이 있는다는 거…… 그걸 말하는 거예요…….”
“아…… 예…….”

중년 남자가 말을 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그쪽이나 나나 이미 결혼한 몸으로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그런 대로 이해할 만한 것 같은데…….”

속으로 ‘나는 원하는 것이 없어요’라고 속삭이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답했다.

“예…….”
“아 참, 이름이 어떻게 되죠? 이런, 내가 이름도 묻질 않았군. 미안해요, 허허!”
“경은…… 이에요.”

아무 생각 없이 내 이름을 말해버렸구나 하고 순간적으로 후회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이름을 바꿀 수도 없었다.

“경은…… 경은이라…… 참 예쁜 이름이군. 외모에 걸맞은 이름이야.”

그는 결혼한 지 19년째로,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아내는 예쁘긴 하지만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으니 매력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그의 귀 위에 언뜻 보이는 새치가 나이를 대신하는 무게와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키는 분명 나보다 컸지만 내가 작은 편이 아니라 나란히 서면 비슷해 보일 정도였다. 강단 있어 보이는 자태와 짙은 눈썹이 거역하기 힘든 외경심까지 들게 하는, 중년 남자만이 가질 수 있는 중후한 품위가 느껴졌다. 같은 또래의 남자들이나 남편과도 전혀 다른, 무게 있는 말과 세련되고 능숙한 행동들이 그의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간간이 어른들만의 의미 있는 외설적인 농담을 했는데, 어찌나 우습고 자극적인지…….

어느덧 어린애 취급을 하며 자연스레 말을 낮춰 대했지만 그리 기분 나빠하지 않으며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식사를 마쳤다.

“자, 그만 일어날까……?”
“네…….”
“경은 씬 시간이 많지 않지?”
“네…….”
“흠……. 원래 남녀간의 만남이란 것이 너무 과해도 그렇고, 적어도 그렇고……. 허허!”

알 듯 말 듯한 말을 하며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그가 내 코트를 펼쳐들어 뒤로 입혀주었다, 이미 어두워진 겨울 저녁은 곤란한 만남을 감출 수 있어 불안한 마음을 어느 정도 덜어주었다.
이제 이 남자는 나를 데리고 둘만이 있을 수 있는 공간으로 데려갈 것이다. 이 남자는 날 어떻게 할까……?

겨울의 밤거리는 빠르게 깊어간다, 그의 차에 동승해 의미 없는 물음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도착한 곳은 R호텔 건너편, 모텔들이 즐비한 골목이었다.

서울 시내에 이렇게 많은 모텔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비로소 알았다. 결혼 전 남편과의 오랜 연애기간 동안 적지 않게 모텔과 여관 등을 찾았지만 그때와는 다른 사람과, 다른 분위기로, 다른 곳에 온 것이다.

한 번 그런 경험이 있어선지 지난번처럼 떨리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마치 프로라도 되는 것처럼 거침없이 그 사람의 뒤를 따랐고 프런트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재미있는 영화라도 있을까……?”

복도 입구에 꽂혀 있는 비디오 테이프들을 돌아보며 그가 말했다. 재킷이 온통 선정적인 컬러와 제목들로 붉게 범벅된 것들이라 그 내용을 짐작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냥…… 들어가요…….”

여느곳과 구조들이 비슷한 방안에는 후끈한 열기가 감돌았다. 따뜻한 분위기로 디자인된 가구와 널찍한 침대가 있고, 천장에는 대형 거울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낯이 뜨거워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데 그가 자기 저고리를 벗으며 앉으라고 했다. 둘이 마주 앉은 채로 담배를 꺼내 물며 그가 피우겠냐고 물었다.

나는 가볍게 도리질을 쳤다. 왜 내가 담배를 피울 거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만나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니까……. 남편이 있는 여자가 외간 남자와 단둘이 모텔에 들어오는 게 흔한 일은 아닐 테니까……. 흔치 않은 일을 서슴없이 하는 날 보고 흔치 않게 담배를 권하는 것이리라…….

나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몸 자태를 살피던 그가 말했다. 입술에 반짝거리게 루즈를 덧칠한 여자를 보면 무척 예뻐 보인다고. 이미지가 자기 사무실의 여직원과 비슷하다며 결혼한 여자 같지 않다고도 했다.

나이 들면서 자기 아내의 욕구가 점점 커져간다고, 그리고 새로운 테크닉을 배우거나 체력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가 물었다. 내 남편은 어떠냐고.

나는 아내 한 사람만 만족시켜주기도 힘든 것 같은데, 왜 이런 만남을 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돌아올 대답이 짐작되는 터라 그만두었다.

그러면서도 회사에서는 근엄하고 엄격하게 직원들을 대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을 그를 상상하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조금 전 식사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세련되고 매너 있는 중후한 품격의 중년 신사였다. 하지만 둘이 마주한 방안에서는 너무나 달라진 말을 내뱉고 있으며, 그의 얼굴에는 새로운 즐거움과 나에 대한 호기심, 어떻게 즐길까 하는 마음들이 쓰여 있었다.

그가 같이 샤워하자고 제안해왔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러자 그가 먼저 욕실로 들어갔고, 이어 나는 옷을 벗었다. 오늘은 관계 후 깨끗하게 뒤처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팬티를 벗어 브래지어와 함께 가지런히 접은 다음 그가 볼 수 없도록 블라우스 밑에 놓았다.

속옷을 벗고 슬립만 입은 채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페이저가 울렸다. 화들짝 놀라며 얼른 확인해보니 남편의 사무실 전화번호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젠 절대로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을 거야…….”

모텔 전화를 쓸 수는 없으니 집에 돌아가 전화하기로 하고 핸드백을 내려놓는데, 욕실 문이 열리며 그가 나왔다, 수건을 들어 물기를 닦으며 나오는데, 수건 사이로 그의 성기가 보였다. 두 다리 사이로 길게 자리잡고 있는, 튼튼하게 생긴 남자의 그것이……. 방에 불을 꺼놓아 어둡긴 했지만 충분히 볼 수는 있었다. 그가 슬립차림으로 당황하며 서 있는 내 뒤로 돌아와 뒤에서 나를 감싸안았다.

“씻어야지?”
“네…….”

깜짝 놀라 작게 말하며 도망치듯 재빨리 욕실로 향하는데, 등뒤로 다짐하듯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끗하게 씻어.”

주문의 의미가 충분히 짐작되어진다, 욕실로 들어서 양치질을 하며 씻지 말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낯선 남자에게 유쾌하지 못한 냄새를 풍기는 게 창피할 것 같았다. 넓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 그 안에 손가락을 넣어 물줄기를 대고는 한참 동안 있었다.

머리가 젖지 않도록 주의하며 몸을 씻고 물기를 닦아내는데, 그가 사용한 칫솔이 보였다. 내 것과 나란히 놓여 있는 칫솔…….
왜 저 사람 칫솔과 나란히 내 것을 놓았을까 하며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놓고 방으로 나왔다. 슬립차림으로 들어오는 나를 바라보며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그가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예쁘군, 몸매가 정말 예뻐……. 아이를 낳지 않은 모양이지?”
“예, 아직…….”
“음…… 그래? 경은 씨…… 팬티를 한 번 입어보면 안 될까?”
“예?”
“팬티 입고 브래지어 하고 이리 와봐.”
“……?”

요구의 의미를 알 수 없어 당황해하며 서 있는데, 그의 말이 이어졌다.

“어…… 기왕 하는 거 즐겁게 해야 하지 않겠어? 왜…… 싫어?”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남자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불안한 마음으로 재빨리 몸을 가리고 속옷을 입었다, 조심스럽게 돌아서니 그가 침대 모서리 위에 앉아 내 손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자기 앞에 나를 세워놓은 채 양손을 잡고는 그윽한 눈길로 내 몸 위아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의 입에서 연신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내 허리와 겨드랑이 쪽으로 양손을 왕복하며 살결이 매우 부드럽다고 말해주었다. 그러고는 내 양쪽 다리의 바깥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나를 옆으로 돌려세운 다음 양손으로 엉덩이와 아랫배를 지그시 누르기도 하고, 뒤로 돌려세워 엉덩이에 자기 얼굴을 대고 비벼대기도 했다. 남편이나 전에 만났던 남자, 또는 결혼 전에 사귀었던 몇 명의 남자들과 전혀 다른 취향과 패턴을 즐기는 사내인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그렇게 하던 남자가 나를 자기 앞에 반듯이 세워놓고는 슬립과 브래지어를 벗긴 뒤 허리에 손을 얹어 팬티 라인을 따라 움직였다. 나는 무안하고 수치스러워 그의 손길을 제지하려 했지만 그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의 손길을 가만히 내버려둔 채 내 몸을 당겨 배에 얼굴을 묻고 허리를 끌어안고 손으로 엉덩이를 쓰다듬는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가볍게 감싸주었다.

“미인을 갖는 것도 좋지만 만지고 보는 것은 더한 기쁨이지.”

그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모든 것을 맡겨두리라고 생각한 나는 더 이상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기로 했다. 과다한 거부와 서툰 몸짓은 오히려 그의 욕심을 부추길 뿐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내 팬티를 무릎까지 끌어내리자 나의 부끄러운 곳이 온통 드러났다. 그는 그렇게 나를 세워놓은 채 양손으로 엉덩이를 잡아당기고는 나의 언덕 주위에다 입을 대고 부드럽게 키스해주었다.

‘참 특이한 남자구나…….’

잔뜩 몸을 긴장시켰던 불안함은 어느새 꼬리를 감추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과 흥분이 어느새 내 안에서 불을 지피며 내 안의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남편과의 성생활은 참으로 만족할 만하다. 그이는 언제나 나를 만족시켜주었고, 내가 경험한 어떤 남자들 못지않게 자상하고 따뜻하게 나를 배려해주었다.

그렇긴 하지만 사람마다 감촉이나 행위의 패턴은 다르게 마련이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파트너가 다를 때의 새로움은 상상 이상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새로움이란……!

이 남자가 그렇다.

그는 지금껏 내가 경험한 그 어떤 남자들보다도 특이했다. 물론 그가 지닌 이런 느낌이 나이와 연륜에서 오는 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침대에 걸터앉은 채 앞에 세운 내 몸을 음미하던 그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창피해? 그래?”
“……예.”
“괜찮아, 어차피 우리 둘뿐인데…….”
“그래도…….”

그는 내 수치심을 최대한 자극하겠다는 투로, 민망하게 계속 서 있기를 요구했다.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두 다리를 약간 벌리게 하고는 손가락으로 나의 그곳을 살짝살짝 터치하며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보았다.

수치심과 창피함이 극에 달한 나는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정면 시야에서 벗어나 무너지듯 침대 위로 누워버렸다. 그러자 그가 옆으로 다가와 앉으며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렇게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사실 나 같은 중년 남자들이 경은 씨처럼 젊은 여자와 같이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거든…….”
“…….”
“첫 만남이지만 따뜻한 분위기로 같이 해줘…….”

그는 여자의 마음과 심리를 너무도 환하게 꿰뚫고 있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며 설득하는 남자에게 차가운 몸으로 버틸 의지는 이미 멀어져갔다.

“그렇게 해줘……. 나도 널 잊지 않을게…….”

부드럽게 속삭이는 그의 말과 손길이 경직된 내 몸을 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알몸이된 그가 내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내 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입을 맞추었다.

나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혀를 깊이 나누며 오직 이 순간만을 생각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남자의 진솔해보이는 부드러운 말 몇 마디와 손길에 내가 이렇게 스스럼없이 무너져 내리다니……!

“네가 먼저 날 애무해줘…….”

그의 말이 떨어지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에게 서비스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조급하지 않은 편안함으로 자상하게 배려하는 그의 완숙한 몸놀림이 마음을 놓이게 한 것 같았다.

그는 반듯하게 침대 위에 엎드렸다. 그러고는 날더러 자기 등 쪽으로 오르게 해 입술과 혀로 자기의 목과 귀부터 애무해주도록 리드했다. 남자 화장품 냄새가 풍기는 목부터 양쪽 귀를 입술로 애무하고 혀를 반듯하게 세워 귓속에 넣어달라고 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엎드린 채 팔을 뻗은 그의 겨드랑이와 어깨, 등과 허리를 거쳐 시키는 대로 그의 엉덩이를 혀로 스쳐 지났다.

“좋아, 좋아……. 까슬까슬한 네 털의 감촉이 정말 좋아…….”

그는 민망하게 움직이는 나를 보고 내가 자기 허리 쪽에 반대로 돌아앉기를 원했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양쪽 허벅지 뒤쪽을 거쳐 발목에서 되돌아 올라왔다. 그가 엉덩이 사이를 자신의 두 손으로 벌린 채 항문을 핥아달라고 해 그대로 해주었다.
다시 반듯하게 앞으로 돌아누운 그가 나를 자기 가슴에 다리를 보고 않도록 한 뒤 배와 허리 쪽으로 애무를 유도했다.

나는 손으로 그의 성기를 잡으며 끝부분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는데, 이미 커질 대로 커진 그의 성기는 하늘 높이 치솟아 있어 나이를 믿기 힘들게 했다.

‘가장 예민한 부분은 제일 나중에 해줄 거야…….’

알 수 없는 호승심이 생겨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면서 입술로 그의 무릎께에 이르자 그가 여자처럼 신음소리를 냈다.

처음 듣는 남자의 신음소리에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묘한 흥분과 기대감이 온몸을 휘감아 더욱 애무에 정성을 다했다.
발목 부분에서 방향을 틀려고 하는 나의 입술과 혀를 보고 그는 자신의 발가락을 입 안에 넣어 빨아주기를 원했다. 순간 망설였는데, 그가 내 발목을 잡고 있던 손을 발가락으로 옮겨 부드럽게 마사지하는 통에 나도 모르게 그의 발가락을 입에 넣고 말았다.

양발을 꼿꼿하게 붙여 세운 채 엄지발가락 두 개를 한꺼번에 내 입 안에 넣은 남자는 신음을 흘리며 마치 고통스러워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요구대로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를 혀로 애무하고 나니 이번에는 그의 차례였다. 나를 눕힌 그가 방금 전 내가 했던 것과 같은 순서대로 애무해왔는데, 정말이지 죽을 것 같은 환희와 떨림이 전신을 휘돌아 그만 첫 번째 만족을 느끼고 말았다.

쳐진 몸을 놓아주지 않고 항문을 혀로 애무하던 그가 혀를 세워 항문 속으로 넣어올 때는 정신이 아득해 방안에 온통 별만 빙빙 도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가 하는 행위의 느낌은 확실히 남편과는 달랐다. 특히 항문과 질구 사이의 회음 부분을 혀로 툭툭 치듯이 하는 애무는 뭐라 형용하기 힘든 흥분을 주었는데, 나의 성감이 그 부분에 있다는 것을 그때 다시 알게 되었을 정도였다.

이윽고 그가 반듯하게 돌려 눕혀진 내 다리를 넓게 벌리고는 허리 아래에다 베개를 넣었다. 이미 나의 그곳은 넓게 벌어진데다 허리에 베개까지 괴니 입술을 최대한으로 벌린 채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야, 이것 좀 봐……. 대단해…… 정말 훌륭하군……!”

감탄하는 눈으로 응시하던 그가 흠뻑 젖은 나의 그곳에 손을 올리고는 양 손가락으로 음순을 잡아 양쪽으로 벌렸다. 다리 사이에 엎드려 양 손가락으로 음순을 잡아 누르며 비비기도 하고, 양쪽으로 벌리기도 하며, 아래위로 당기기도 하면서 한참 동안 혀로 애무하자 나는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한껏 입구가 벌어진 나의 그곳에 혀를 넣으며 때로는 깊게, 때로는 얕게 넣고 빼기를 반복하자 두 번째 오르가슴이 찾아왔다.

“아, 이제 그만…… 이제 그만……!”

그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거의 우는소리로 말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더욱 집요하게 매달렸다.

“이제 시작이야…….”

손가락을 이용해 질 속을 부드럽게 만져주는데, 정말이지 죽을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그가 하는 대로 몸을 맡긴 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의 입구 부분 클리토리스를 만지거나 입으로 애무했던 지금까지의 모든 남자들과 확연히 다른 느낌과 흥분을 끊이지 않고 만들어 도무지 정신차릴 틈을 주지 않았다. 이 사람한테 이런 애무를 받으며 함께 사는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가 내 다리를 들어올리며 몸을 일으킬 때 나는 자기 것을 내 안에 넣으리란 걸 느끼고는 최대한 다리를 벌려 그를 맞으려고 심호흡을 했다. 서서히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서트할 때는 천천히 하고 나갈 때는 빠르게 되돌아가는 그의 허리 움직임이 특이하기도 했지만, 어찌나 정신이 몽롱하고 아쉬우며 감질나는지 그가 영원히 내 안에서 나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의 움직임은 불과 2~3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있었던 그의 허리 움직임은 나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으며, 삽입 후의 지속 시간이 짧아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재차 깨닫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의 전신에 퍼지는 미세한 진동이 내 몸 속까지 전해져왔다. 내가 경험했던 모든 남자들의 그 짧은 순간이 정말 궁금했다.

‘왜 남자들은 사정할 때 몸을 떠는 걸까……?’

그가 고맙다며 내 얼굴을 보듬고 자상하게 입을 맞춰왔다. 그의 입술에서는 내 안에서 나온 체액 냄새가 났는데 나는 그것을 남김없이 입으로 빨아 닦아주었다.

문득 그의 성기에 내 체액과 그의 정액이 묻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래쪽으로 손을 내려 살며시 만져보니 미끈미끈한 감촉이 느껴졌다. 왜 그랬는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그에게 말했다.

“제 입으로 닦아드릴까요……?”
“응.”

그가 웃으며 그러라고 했다. 예상대로 축축하게 젖은 채 작아진 그의 성기는 내 안에서 나온 체액과 자기 정액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입에 넣어 물고는 아래위로 움직이기도 하고 혀로 예민하게 움직여 깨끗하게 닦아내자 그가 더욱 사랑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고마워, 경은…….”

나도 눈을 마주쳐 같이 웃어주었는데,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다정함과 신뢰감이 좋았다. 그때 나는 아마도 나보다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남자를 만족시켜주었다는, 자신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대견함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았다.

“경은…… 다시 만날 수 있지?”
“저…… 이젠 이런 만남 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

나는 아쉬운 표정을 짓는 그를 뒤로 하고 먼저 욕실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샤워를 했다. 물론 그렇게 정성 들여 닦는다고 그의 흔적이나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조용히 욕실 문을 열고 나오자 그가 까닭 모를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욕실로 들어갔고, 나는 욕실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화장을 고치고 옷을 입었다. 남자는 나와 젖었던 흔적이 미처 다 씻겨지지도 않을 정도로 짧게 욕실에서 머물다 나왔다. 먼저 옷을 챙겨 입은 나는 그가 옷 입는 걸 도와주려고 셔츠를 집어주었다.

“경은이가 넥타이를 매주면 안 될까……?”

남편의 넥타이를 매준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남자에게 그걸 해준다는 것이 왠지 어색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주는 편이 빨리 이 어색한 자리를 모면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앞으로 다가서는데 그가 내 허리를 당겨 안았다.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가 거듭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자꾸만 매달리는 통에 할 수 없이 나는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조금 안도하는 표정으로 자기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나와 그 남자는 곧장 방에서 나와 그의 차에 올라탔다. 나는 적당한 곳에 내려달라고 말했지만, 그는 한사코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까지 차를 몰았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그가 내 손목을 잡고는 한 손으로 가볍게 내 목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고마웠어…… 정말.”
“…….”
“고마웠어, 경은……. 꼭 다시 연락해야 돼…….”

헤어짐을 앞두고 끝까지 자상함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 그를 보며 어쩌면 이 사람과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 다음 차에서 내려 집 쪽으로 걸었다.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정차해 있던 그의 차가 출발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발걸음을 빨리 해 집으로 들어섰다. 마음이 급했다. 전화기부터 확인해보니 남편의 음성 메시지가 세 번이나 녹음되어 있었다.

“이젠 절대로 안 해…… 남편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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